
영화 ‘더 스퀘어(The Square)’는 제가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불편하면서도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위선, 도덕적 판단의 흐릿함, 현대사회의 이중적인 태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영화는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현대 미술을 비꼬는 유쾌한 풍자극 정도로 생각하며 보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 안에 남은 건 웃음이 아니라 무거운 질문들이었습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우리는 과연 타인의 고통 앞에서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그리고 예술이 정말 그런 질문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 ‘더 스퀘어’는 단순히 미술관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그 안의 모순을 거울처럼 비추는 작품이었습니다.
1. 더 스퀘어가 예술 풍자로 드러낸 위선과 불편한 진실들
‘더 스퀘어’는 스웨덴의 한 현대미술관을 배경으로 전시 책임자인 크리스티안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는 세련되고 지적인 인물로, 예술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책임감 있는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그 외피를 하나씩 벗겨내며 그 안의 위선과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전시 프로젝트 ‘더 스퀘어’ 자체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공간을 만든 사람들과 관객들이 그러한 가치에는 무관심하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면서 여러 번 ‘예술이 정말 이런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은 거창하고 메시지는 고결하지만,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실제 삶은 그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영화는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영화 속에서 크리스티안은 지갑과 핸드폰을 소매치기당한 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의 방식으로 ‘사적 복수’를 감행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점점 더 무기력해지는 그의 모습은 예술과 도덕, 개인과 사회 사이의 간극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 미술관에서 열린 후원 행사 장면입니다. 퍼포먼스 아티스트가 고릴라처럼 행동하며 관객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결국 폭력적인 상황까지 치닫는 장면은 너무 불편해서 차마 눈을 제대로 뜨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장면이야말로, 예술이 인간의 본능을 어디까지 자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관객의 무관심과 방관, 혹은 도덕적 이중성까지도 드러내는 압도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예술을 풍자하면서도 결코 예술 자체를 폄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인상 깊었습니다. 오히려 영화는 예술이 얼마나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수단인지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위선을 벗겨내려는 의도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더 스퀘어’는 우리가 얼마나 겉으로는 정의로우면서도 실제 행동에 있어선 이기적이고 무관심한지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영화였습니다. 특히 예술을 일종의 ‘면죄부’처럼 사용하는 현대인의 태도는 저에게 꽤 오랫동안 불편한 감정으로 남았습니다.
2. 도덕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본성
‘더 스퀘어’는 한 개인이 극도로 도덕적인 이미지와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균열을 겪고 무너져가는지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크리스티안은 사회적 지위도 있고, 말도 잘하며, 인문학적 소양도 갖춘 인물로 등장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의 도덕성이 얼마나 얄팍하고 형식적인지를 하나하나 밝혀냅니다. 저는 그의 캐릭터가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더 불편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습이 어쩌면 우리 모두의 초상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의 지갑을 소매치기당한 후,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일방적인 분노로 아파트 단지 전체에 협박성 편지를 넣습니다. 그 결과 피해자와 아무 관련 없는 소년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되지만, 그는 그 사실을 마주한 후에도 진심어린 사과 대신 현실적인 타협만을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인간이 정의를 외치면서도 얼마나 쉽게 자신의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지를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그 회피는 대부분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자기 합리화에서 시작된다는 것도요. 또한 그가 기자와 하룻밤을 보낸 뒤 그녀의 감정을 무시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태도 역시 일관됩니다. 그는 어떤 행동이든 일단은 똑똑하게 말로 포장하고 넘어가려 하지만, 현실의 감정은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저는 그의 이런 모습에서 이 시대 지식인들의 공허함을 봤습니다. 말로는 정의와 연대를 외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자신을 지키는 데만 급급한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더욱이 도덕이라는 개념 자체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도 영화는 잘 보여줍니다. 퍼포먼스 예술이 도덕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때, 그걸 방관하거나 박수치는 사람들, 또는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침묵하는 사람들 모두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저는 ‘선택적 도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정의나 윤리를 외칠 땐 용기 있게 말하지만, 실제 행동이 요구되는 순간엔 ‘나 하나쯤은’ 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빠지곤 하죠. ‘더 스퀘어’는 이처럼 도덕이라는 주제를 이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로 접근하며, 우리가 얼마나 쉽게 그 경계에서 흔들리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줍니다. 그 불편함은 영화를 보는 내내 따라다녔고, 저는 이 불편함이야말로 영화가 우리에게 주고자 한 핵심 메시지였다고 생각합니다. 도덕적 인간이란 무엇인가? 도덕은 말로 외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불편함을 감수하며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임을 이 영화는 끝까지 지켜내고 있었습니다.
3.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공허한 소통의 풍경들
‘더 스퀘어’는 예술과 도덕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현대사회에서의 소통이 얼마나 공허하고 단절되어 있는지를 날카롭게 그려낸 영화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영화가 보여준 수많은 대화 장면들을 통해, 말은 넘쳐나지만 진짜 의미 있는 소통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크리스티안과 홍보 담당자의 대화입니다. 미술관의 새로운 전시인 ‘더 스퀘어’를 홍보하기 위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얼마나 ‘충격적이면서도 이슈가 될 만한’ 장면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집중합니다. 이 과정에서 진짜 작품의 의도나 가치보다는, 얼마나 많은 클릭 수를 유도할 수 있느냐가 중심이 됩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미술계에 대한 풍자를 넘어서, 오늘날 콘텐츠를 소비하고 유통하는 방식 전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느껴졌습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영상은 노숙자가 아이를 끌고 들어가 폭발하는 충격적인 장면이고, 이는 대중의 분노와 논란을 일으킵니다. 이 장면은 현대 사회에서 ‘자극이 곧 소통’으로 오인되는 현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진짜 대화는 어디로 갔는지를 묻는 듯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너무 현실적이라 오히려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진심이나 공감보다, 얼마나 눈에 띄느냐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자조 섞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 크리스티안이 다른 인물들과 나누는 대화 대부분은 진짜 대화라기보다 자기방어적이거나 위선적인 말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기자와의 대화, 동료들과의 대화, 아이 아버지와의 대면 등 대부분의 장면이 소통을 위한 대화라기보다는 책임 회피, 이미지 관리, 혹은 감정 회피를 위한 말들로만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얼마나 ‘말은 많지만 마음은 없는’ 대화를 반복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영화 후반, 크리스티안은 문제의 영상을 삭제하고 공식 사과 영상을 찍습니다. 하지만 그 사과 역시 개인적인 반성이 아닌, 미술관과 자신의 이미지를 위한 선택입니다. 이 장면은 소통이란 결국 ‘형식’에 불과할 수 있음을 날카롭게 비틀며, 진짜 반성과 대화는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저는 ‘더 스퀘어’를 보며, 우리가 얼마나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소통은 거의 하지 않고 살아가는지를 실감했습니다. 말은 많지만 의미는 없는 대화들, 클릭 수와 조회수를 위한 자극적인 콘텐츠들, 책임을 피하려는 말장난들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가고 있는 듯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 고립의 풍경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그리고 불편할 정도로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